잘 알려져 있는 수렵민족
로마 초창기의 갈리아 족이 대표적인 수렵민족이었지요.
물론 발칸반도로 이주하기 전의 그리스인, 헝가리에서 이주한 일리리아인, 그리고 이탈리아로 이주한 라틴인들 역시 수렵민족이었지만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갈리아 족은 동방에서 이주하여 보헤미아, 독일을 거쳐 갈리아(오늘날의 프랑스), 브리타니아(오늘날의 영국) 그리고 북이탈리아로 이주하였지요.
로마인들은 북이탈리아의 갈리아 족을 키살피나, 프로방스의 갈리아 족을 트란살피나로 구분하였지요.
그런데 이들은 로마가 강대해지기전 즉 중북부이탈리아에서 한 때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였던 에르투리아와 전쟁을 벌이고 있을 무렵부터 로마를 위협하기 시작하였지요.
얼마나 로마인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는지 ‘갈리아 족의 침입만 경고하는 신’을 만들 정도였지요.
그러나 로마가 점점 강성해져 중북부의 에르투리아, 중남부 산악지대의 삼니움 족 및 남부의 그리스 식민도시들을 정복한 후에는 이들 갈리아 족이 밀리기 시작하였고 한니발 전쟁 후에는 키살피나와 트란살피나가 정복되어 각각 북이탈리아 속주와 프로방스 속주가 되었지요.
나머지 지역 즉 갈리아에 거주하고 있던 갈리아 족 역시 동쪽 게르만족에게 시달리다가 불세출의 명장, 명정치가인 시저에 의하여 정복되어 오늘날 벨기에라는 종족 이름만 남긴 채 완전히 라틴어, 라틴문화에 동화되었습니다.
최근에 들어와서야 프랑스에서 자신들이 위대한 수렵민족 갈리아 족이었다는 주장을 하고는 있지만 이들이 라틴어에서 파생한 프랑스어를 버리고 스코틀랜드 북서쪽에서 사용되고 있는 게일어, 웨일즈의 언어, 브레타뉴어 등을 사용할리는 없습니다.
중국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일어났는데 단지 이곳에서는 문헌이 부족하고 수렵민족을 정복한 중국인들의 역사 왜곡과 이들 수렵민족의 후손인 우리 한민족의 중국 숭배 등으로 아직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요.
실상은 이럴 것입니다.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의 주인이 된 주나라는 주위 이민족들을 정복하기 위하여 변경에 일족을 보내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지금의 북경 근처에 지라 잡은 연나라였지요.
그런데 연나라는 건국 초부터 주위 이민족의 습격에 언제나 고달팠습니다.
열국지의 기록에 의하면 북융 족이 연나라를 습격하여 거의 멸망 위기까지 몰린 연나라는 춘추오패의 첫 번째인 제나라의 환공의 구원으로 간신히 북융 족, 고죽 족을 물리칠 수 있었지요.
제나라를 위시한 연합군에게 호되게 당한 북융과 고죽 등은 점차로 약해져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지요.
고토에 머무르며 중국화 될까? 동쪽으로 이동하여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날까? 북쪽으로 이주하여 유목민이 될까?
삼국지에 나오는 공손찬은 중국 화된 북융, 고죽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고
만주에서 부여를 건설한 동명왕은 동쪽으로 이주한 무리들의 수령이었고
서방에서 몰려온 이란계 스키타이족에게서 기마전술을 익히고 남쪽 오르도스로 이주하여 세력을 떨친 훈(흉노)로도 많은 이들 중국에 의하여 쫓겨난 수렵민족이 이동하여 합류하였습니다.
단지 중국의 세력에 밀려 요서, 요동, 만주를 거쳐 한반도로 이동한 후 전통적인 수렵 생활을 버리고 선주민인 농경민에게서 배운 농사를 짓게 된 우리 한민족은 점차로 중국 문화를 수용하게 되면서 과거의 역사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중국에서 수렵 경제로 살고 있었던 수렵 민족의 후손들입니다.
그리고 유목민 일부도 한반도로 이주하였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말은 이들 수렵 민족, 유목민들이 사용하였던 알타이어입니다.
연해주, 시베리아, 내몽고에 남아 있는 퉁구스어, 내몽고, 외몽고, 시베리아에 남아 있는 몽고어 및 서쪽의 투르크어(타타르어, 투르크멘어, 카자흐어, 우즈벡어, 키르기스어 그리고 터키어 등)과 동일한 어군에 속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