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최고위원에 류여해라는 이름의 정치 신인이 당선됐다. 입당 4개월만이다. 여성몫으로 할당된 최고위원 자리가 있었지만 현역 이철우 의원에 이어 당당히 2위를 차지했다.
대선 참패 후 치러진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는 홍준표 대표의 대세론을 확인하는 선거였다. 동시에 그의 ‘막말’이 또다시 주연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류여해 최고위원은 홍 대표의 ‘막말’을 빛나게 한 ‘훌륭한 조연’이 됐다. 권역별 합동연설회에서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행동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류 최고위원은 혼잣말로 ‘부족하다’를 되뇌이며 자유한국당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는데 언론은 메소드 연기 뺨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류 최고위원은 “화장도 필요없다. 구두도 필요없다”며 하이힐을 벗어던지고 연단에 올라 태극기를 흔들며 60년대 반공영화에서나 나옴직한 ‘태극기 휘날리며’를 불렀고, 그의 모습을 담은 영상은 패러디 대상이 됐다.
류 최고위원이 합동연설회에서 무수히 썼던 단어는 ‘변화’였지만 그의 행동은 시대에 뒤쳐진 것들이었다. 언론은 ‘여자 홍준표’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튀는 행동을 조롱했다.
▲ 7월 3일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사에서 열린 홍준표 신임당대표 기자회견이 끝나고 류여해 최고위원이 홍 대표와 함께 인사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다른 한편에선 변화의 바람으로 류 최고위원을 소개했다. 연합뉴스가 그의 당선을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당 지지율이 땅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당의 변화를 기대하는 당원들의 심리가 투영됐다는 분석”이라고 보도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같은 언론의 조롱과 분석에 류 최고위원은 뒤에서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류 최고위원은 종합편성채널 등에 패널로 출연해 보수를 대변하는 평론가를 자처해왔다. 그리고 지난 1월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이 새누리당 중앙윤리위원회 위원으로 그를 임명하면서 중앙 정치에 본격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그는 자유한국당 팟캐스트 ‘적반하장’ 진행을 맡아 자신을 ‘진보 우파’라고 규정하며 특유의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매체를 통해 인지도를 높인 뒤 이단아의 모습으로 깜짝 등장하는 전형적인 미디어노출 전략을 활용했고 중앙정치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문제는 류 최고위원이 자유한국당을 오른쪽으로 무게중심을 더욱 옮기는 역할에 나설 것이라는 점이다.
류 최고위원은 합동연설회 당시 “구치소 안에 있는 박근혜도 지켜야 한다. 자유한국당도 바뀌어야 한다. 언론과 함께 싸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언론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탄핵을 인정하지도 않고, 진행 중인 재판도 불공정하다는 주장이다. 정치권력을 견제 감시하는 게 언론의 역할인데 정치권력이 언론을 만들어 스피커를 키우겠다는 황당한 발상이다.
류 최고위원은 지난 5월 <왜 지금 비선실세를 말하는가>라는 책을 통해 박근혜 탄핵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그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정을 보면서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보수우파의 슬픔을 달래주기 위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그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역설한 니뮐러 목사의 시를 인용하면서 “내게 왜 정치를 하느냐고 물으면 아무도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이 없는 그 세상이 될까 두려워서 동지들과 손잡기 위해 걸어나가기 위해 시작한 것이다. 법치가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4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공개발언하고 있는 류여해 자유한국당 최고위원. 사진=민중의소리 |
지난 6월 12일엔 ‘박정희 대통령 혁명 동지’라며 헌정회 국가원로회를 찾았다. 그리고 사흘 후엔 “주사파가 설쳐대는 대한민국 어찌하오리까”라는 글을 SNS에 남겼다. 한창 최고위원 경선이 벌어지던 지난달 29일에는 “나라가 위기를 넘어서서 좌파정권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극우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는 류 최고위원의 당선 배경을 이렇게 분석했다.
“당원들과 국민들은 류여해에게 왜 몰표를 던졌을까. 류여해는 당당했다. 그동안 자칭 보수라는 인사들이 보수가 무슨 죄인인양 자신 없어 하던 모습들만 보여줬는데 류여해는 달랐다. 박근혜 대통령 문제에서도 다른 자한당 X들이 혹시 자신에게 불리할까 걱정하며 박 대통령과 거리두기를 할 때 류여해는 박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여기서 샤이 박근혜 국민들은 류여해에게 감명과 연호를 보내게 된 것이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보수의 본당으로 다시 일어서느냐 아니면 수구잔당으로 몰락하느냐”라는 말로 자유한국당의 미래를 전망한 바 있다. 류여해 최고위원의 앞으로의 행보는 자유한국당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다.